“왜 지리산을 방호산(方壺山)이라고 하느냐? ‘壺(호)’는 호리병이라는 뜻이다. 방호산은 ‘사방이 호리병이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왜 지리산을 호리병에다가 빗대었을까. 물론 도가에서 은둔하는 별천지를 호리병에 비유하는 전통이 있다. 호리병은 세속과 격리된 또 다른 세계를 상징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지리산의 산세를 호리병으로 볼 수 있는 것인가?”지리산 치밭목 산장에 30년간 상주하면서 지리산의 역사와 유적, 골짜기와 봉우리, 샘물 등을 환히 꿰고 있는 민병태(68) 선생은 필자의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주었다.“호리병이라고 충분히
힘이 있을 때 산에 들어가서 사는 게 좋다. 되도록 젊었을 때 입산해서 사는 게 어떨까 싶다. 힘이 쇠약해지면 산에서 사는 게 힘들다. 우선 일상생활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가 없던 시절에는 산중턱에 위치한 거처에까지 올라 다니는 게 힘이 들었다. 물건을 하나 사는 것도 그렇고, 일상생활이 산속에 살면 불편하다. 힘 떨어지면 도시에 사는 게 좋다고 본다.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도시에서 약간 부대끼면서 사는 것도 괜찮다. 도시의 대학 근처에서 사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식사하고 대학 캠퍼스 산책하는 것도 좋고, 각종 문화 행사
서양 중세시대 전쟁영화를 자주 보는데, 그 압권은 공성전이다. 예를 들어 성 안에는 5000명의 수비 병력밖에 없지만 성 밖의 적군은 5만명이 포위하고 있다. 절대 불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마지막에는 성을 탈출해야 한다. 탈출할 때 지하로 땅굴이 파여 있어서 성 밖으로 아무도 모르게 피신할 수 있는가. 나는 공성전 영화를 볼 때마다 최후의 피신처, 즉 적군이 눈치채지 못하게 탈출할 수 있는 지하 통로가 있는가 여부를 아주 눈여겨본다. 인생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포위된 인생이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가? 36계를 생각해
서울은 글로벌 도시이다. 첨단문명이 작동하는 대도시인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는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이 유지되고 있다. 평창동의 보현산신각이 그것이다. 이 산신각은 불교사찰의 부속 건물이 아니다. 산신 그 자체만 독존으로 모셔져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보현(普賢)이라는 이름은 북한산의 보현봉(普賢峰) 자락이 내려온 곳에 자리 잡았다고 해서 붙여졌다.21세기에도 이 산신각은 기능이 작동되고 있다. 박물관 유물이 아니고 주변의 동네 사람들과 타지의 신봉자들에 의하여 아직도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를 끈다. 아직도 유지